칼 짜이스 비오타 렌즈 이야기 (2/2)

동독과 서독의 칼 짜이스

예나에 남아있던 칼 짜이스의 직원들은 가혹한 전쟁배상금을 감내해야 하였습니다. 러시아는 남은 설비의 92%를 뜯어서 키에프 인근 Kragonorsk 로 이전하고 그곳에서 러시아판 짜이스 렌즈들을 생산하기 시작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47년 말이 되자 ‘칼 짜이스 예나’는 다시 공장을 돌려 렌즈를 생산할 수 있는 상태까지 복구 되었습니다

서독으로 망명한 직원들은 오베르코헨에 공장을 다시 지었지만, 처음부터 Carl Zeiss 라는 이름을 붙이지는 못했습니다. 칼 짜이스는 1846년 예나에서 설립되어 동독과 서독이 갈라지는 1945년까지 무려 100년을 그곳에서 이어온 회사 입니다. ‘예나’가 아닌 칼 짜이스는 생각하기 힘든 상황이었겠지요
그렇지만 분단 초기, 예나에 있는 본사(?)는 물심양면으로 서독의 회사를 지원 합니다. 동독에 공산주의 체제가 들어서면서 모든 회사가 국유화 되어 ‘콤비나트’로 묶이고, 엄청난 양의 설비와 도면, 치공구를 빼앗기면서 회사가 존립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서독으로 탈출한 동료들이 만든 회사는 말하자면 전쟁 통에 헤어진 동생이 불모지에서 사업을 일구는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최악의 경우 동독의 짜이스가 공중분해 되더라도 서독에 그 뿌리가 남을 수는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1946년에서 1947년 사이에, 서독에는 칼 짜이스 재단이 하이덴하임, 짜이스-옵톤 광학은 오베르코헨, 쇽트 글라스는 마인쯔, 그리고 짜이스 이콘은 슈트트가르트에 속속 세워지게 됩니다

1947년부터 생산을 시작한 Zeiss-Opton 의 렌즈들은 같은 이름을 사용하지만 광학식은 재설계된 것 들입니다. 예나에서 설비나 도면을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니라서, 렌즈를 똑같게 만드는 것보다, 그냥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여 만드는 것이 쉬웠기 때문입니다. 이 때부터 족보가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 Tessar; 3군 4매의 텟사 렌즈인 경우 Carl Zeiss Jena 2차대전 이전 버전, Carl Zeiss Jena 동독 버전, Zeiss Option 서독 버전 그리고 Carl Zeiss 서독 버전이 존재합니다.
  • Sonnar; 3군 7매의 조나 렌즈도 마찬가지로, Carl Zeiss Jena (전전), Carl Zeiss Jena (전후 동독), Zeiss-Opton (전후 서독) Carl Zeiss (서독) 버전이 있습니다. 텟사와 조나 렌즈는 동서독 렌즈가 광학적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외형적으로도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 Biogon; 광각렌즈 비오곤 (Biogon)은 설계가 크게 달라졌습니다. 전후 동독에서 나온 35mm f2.8 비오곤은 전전의 비오곤과 동일한 렌즈에 코팅만 더해진 것 이지만, 서독에서 재설계된 35mm f2.8 비오곤은 렌즈 후면의 길이가 훨씬 짧아지고 외형적으로도 확연하게 구분 됩니다. 이름만 동일하고 내용은 다른 렌즈 입니다. 전후 슈트트가르트에서 생산된 Contax IIa 와 IIIa 카메라에는 서독 버전의 비오곤만 맞습니다. 예나 버전의 비오곤 35/2.8 은 렌즈 후면이 셔터 뭉치에 부딛칩니다.
  • Biotar; 서독제 비오타 렌즈는 없습니다. Zeiss Opton 그리고 이후의 Carl Zeiss (West Germany)도 비오타 상표의 렌즈를 발매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비오타 렌즈는 전전의 Carl Zeiss Jena 제품 이거나 (version 1) 또는 전후 동독 Carl Zeiss Jena (version 2 & 3)의 제품 입니다. 그대신 서독의 짜이스는 1897년 이후 사장되었던 상표 Planar를 끄집어내 새로 디자인 된 대칭형 렌즈에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 Biometar, 전후 동독의 Carl Zeiss Jena 에서 새로 설계된 일부 렌즈에 사용합니다. 콘탁스용 35/2.8 과 펜타콘 6 용 80/2.8 이 있습니다
  • Distagon, 전후 서독의 Carl Zeiss 에서 Retrofocus 방식의 광각렌즈(SLR 렌즈)에 두루 사용합니다
  • Flektogon, 전후 동독의 Carl Zeiss Jena 에서 Retrofocus 방식의 광각렌즈(SLR 렌즈)에 사용합니다
  • Flexon, 전후 동독의 Carl Zeiss Jena 에서 새로 설계된 4군 6매 표준 렌즈에 사용 하였습니다. 렌즈 사양은 50mm f2.0 이며 58mm f2.0 보다 진보된 디자인이지만 곧 50mm f1.8 판콜라(Pancolar) 로 바뀌면서 단종 되었습니다

롤라이플렉스와 핫셀블라드의 공통점

       

플라나(Planar) 렌즈가 2차대전 이후 고성능 렌즈의 대명사로 떠오른 것은 무엇보다도 프로 사진가들이 자부심, 그리고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로망이었던 120형 중형 카메라 롤라이플렉스 (Rolleiflex)와 핫셀블라드 (Hasselblad)의 표준 렌즈였다는 사실이 클 것 입니다. 오늘날의 ‘애플빠’는 명함도 못 내밀 팬덤을 형성한 최상급 카메라 두 기종에 칼 짜이스 플라나가 붙어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후광 번쩍이는 신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최초의 85mm f1.4 렌즈, 롤라이플렉스용

 

 

1950년대는 아직 동독과 서독의 짜이스가 상표권 시비를 붙을 때가 아니었지만, 동서 냉전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예나와 오베르코헨이 사이 좋게 협업을 할 수 있을지, 불길한 느낌은 있었을 겁니다. 실재로 분단 이후에 개발된 렌즈에는 동서독이 제각각 상표를 붙인 것만 보아도, ‘언젠가는 한번’ 치뤄야 할 이혼소송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양쪽 모두 알고 있었을 겁니다

서독의 짜이스가 비오타 상표를 멀리하면서, 본의 아니게 테일러, 테일러 홉슨의 Opic 렌즈에서 파생된 비오타 렌즈는 서방세계에서 존재감이 흐려지고, 그보다 헐씬 먼저 만들어진 플라나가 현대적인 렌즈 디자인의 원조인양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플라나가 포토그라피가 아닌 리쏘그라피 렌즈 였다는 사실은 뭐, 60년 후에 와서는 문제 삼을 분위기는 아니었겠지요. 테일러, 테일러 홉슨도 사진 렌즈 업계를 떠난 지 오래되어, 누가 원조 집이냐 따질 상황도 아니었고 말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철의 장막과 핵전쟁의 공포가 서방세계를 짓누르는 상황에서 볼쉐비키 동무들이 만든 제품을 사갈시 하기 시작한 것이 가장 큰 타격 이었을 겁니다. 60년대를 지나며 냉전은 더욱 격화되고, 갑툭튀 일본의 등장으로 독일 사진기 산업이 내리막길로 접어들면서 동독 예나의 비오타 렌즈는 역사의 한켠으로 찌그러지고 맙니다.

중고 렌즈

Biotar 58mm f2.0 ; 과거 동독에서 쏟아져 나왔던 58mm Biotar 는 아직은 개체 수가 많기 때문에 가격이 저렴하고 가성비 좋은 수동렌즈 역할을 합니다. 외형에 따라 3가지 버전으로 구분합니다. 렌즈 마운트는 60% 정도가 엑작타, 20% 정도가 M42 마운트, 그리고 나머지 20%는 프락티나** 마운트 입니다.

  • Version 1 – 2차 대전 이전에 칼 짜이스 예나에서 생산된 렌즈들 입니다. 원래는 무코팅 렌즈이지만 전후에 공장으로 보내 코팅을 한 경우도 많습니다
  • Version 2 – 전후 동독 칼 짜이스의 초기 제품입니다. 일반적인 수동 렌즈이고 조리개도 완전 수동입니다. 요즘 디카에 쓰기에는 이런 방식이 더 편리 합니다
  • Version 3 – 전후 두번째 제품이며 반자동 (Preset) 방식의 조리개 입니다. 디카에 이종교배로 쓸때 다소 불편합니다

 

Biotar 75mm f1.5 ; 58/2.0의 자매품 75mm f1.5 Biotar 는 요즘 말로 ‘떡상’을 하여 지금은 터무니 없는 가격에 거래가 되고 있습니다. 외형에 따라 3가지 버전으로 구분합니다. 렌즈 마운트는 58/2.0 과 유사 합니다만 개체수가 적기 때문에 장터링을 하는 시기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 Version 1 – 2차 대전 이전에 엑작타 용으로 나온 렌즈입니다.
  • Version 2 – 전후 동독 칼 짜이스의 초기 제품입니다. 개체수는 Version 3 보다 적고 상태가 좋은 경우가 드물어, 쓸만한 Version 2 는 가격이 꽤 높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 Version 3 – 후기형이며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형태 입니다. 뚱뗑이 비오타 (fat Biotar)라고도 불립니다

Biotar 50mm f1.4 ; 35밀리 사진기용 렌즈가 아니었던 Biotar 50/1.4는 최근에 떡상을 하고 있는 중 입니다. 렌즈 마운트도 일반 사진기 마운트가 아니라 Penflex 라는 16밀리 영화 촬영기 마운트 입니다. 소니 FE 에 붙일 수 있는 어댑터가 있기 때문에 밀러리스 카메라에 주로 사용됩니다. 특기할 점은 비오타 50/1.4가 라이카 렌즈와 동일한 사양의 헬리코이드*를 사용하기 때문에 M 마운트로 개조하여 연동거리계를 맞출 수 있다는 점 입니다.

(* 라이카 M 마운트 캠은 무한대에서 1미터까지 움직일 때 3.00mm를 이동합니다. 렌즈 헬리코이드가 움직이는 거리가 이것과 일치하지 않으면 연동거리계로 초점을 맞추는 것이 불가능)

 

과거 캐논 DSLR 을 이종교배 플랫폼으로 쓸 때는 M42 마운트의 편의성의 높았지만, 밀러리스가 대세인 지금은 엑작타나 프락티나의 어댑터도 풍부하기 때문에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엑작타 / 프락티나 버전을 구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엑작타 어댑터는 일본 톱콘의 렌즈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 프락티나 Praktina는 프락티카 Praktika와 혼동하기 쉬우나 엄연히 다른 카메라 입니다. 프락티나 렌즈 마운트는 스피곳 방식 (캐논 FD와 같은 방식) 그리고 프락티카는 M42 마운트 입니다)

에필로그

중형에서 칼 짜이스의 플라나는 압도적인 명성을 차지했지만 35밀리 분야에서는 혼전과 부침을 거듭하였

습니다. 그 이야기는 이제 비오타 이야기와는 다른, 별도의 장이 됩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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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Leo_KHIM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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