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짜이스 비오타 렌즈 이야기 (1/2)

칼 짜이스 광학의 플라나 그리고 비오타

칼 짜이스 광학의 플라나 (Planar) 렌즈는 20세기 사진 렌즈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대구경 표준 렌즈와 준망원 렌즈에 주로 사용되는 ‘대칭형 디자인’ 또는 ‘더블 가우스 ‘ 디자인의 원조입니다. 사람들이 트렌치 코트를 ‘바바리 코트’라 부르듯이, 플라나(Planar)는 칼 짜이스의 렌즈 상표이지만, 이후에 파생된 대칭형 렌즈를 죄다 ‘플라나 타입 (Planar type)’ 또는 ‘플라나 디자인 (Planar design)’ 이라 부르는 대표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칼 짜이스에는 비오타(Biotar)라 부르는 ‘대칭형’ 렌즈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리고 비오타가 사진 렌즈로 먼저 발매 되었습니다. 그러면 왜 대칭형 렌즈를 ‘비오타 타입’ 이라 하지 않고 ‘플라나 타입’ 이라 부르게 되었을까요?

      Biotar design diagram

독일의 광학 산업은 20세기 전반에 세계를 석권하는 대부흥기를 거쳐, 2차 세계대전 그리고 동서독으로 나라가 분단되는 격동기를 지나면서 칼 자이스의 ‘비오타’와 ‘플라나’의 운명도 바뀌어 버린 것 입니다.

플라나 오리지널 디자인

     Planar schematic, 1897

1897년에 등록된 플라나의 디자인(그림 1)를 보면 우리가 알고있는 대칭형 렌즈(그림2)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 특징상 사진용 렌즈(Photography lens) 보다는 인쇄용 렌즈(Lithography lens)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1. 전면 그룹(L3 L2 L1) 과 후면 그룹(L1 L2 L3)가 동일하기 때문에 조리개를 중심으로 서로 바꿔 끼울 수 있다.
  2. 렌즈 알의 직경이 모두 동일하다(원통형)

전면 그룹과 후면 그룹이 거울에 반사된 상처럼 완전 대칭이면 색 수차와 왜곡 수차가 자동으로 상쇄되어 화질이 높아집니다. 그렇지만 렌즈의 초점거리와 같거나 비슷한 거리에 피사체가 있는 경우에만 수차 상쇄의 이점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사진용 렌즈는 초점거리가 50mm 인 렌즈로 50mm 떨어진 곳의 물체를 촬영하지는 않습니다. 가깝다 하더라도 초점거리의10배, 즉 50센치 또는 그 이상 떨어진 피사체를 촬영하게 됩니다. 반면에 인쇄용 렌즈는 원고를 찍기 때문에 보통 초점거리의1배에서 5배 사이 거리에서 촬영 하게 됩니다. 따라서 사진용 렌즈와 인쇄용 렌즈를 설계할 때 고려하는 변수, ‘입사광의 각도’가 현저하게 달라지게 됩니다.

2번과 같이 렌즈 알의 직경이 모두 동일한 설계는 렌즈가 어둡기 때문에(플라나 원형 디자인은 f4.5), 자연광보다는 일정한 양의 인공조명을 사용하는 곳에 적당합니다. 청사진, 도면 제작, 출판 등의 Lithography 가 바로 이런 분야 입니다.

오늘날은 컴퓨터로 자료를 저장하고 프린터나 플로터로 도면을 출력하는 세상이지만 지금으로부터 120년전 1897년은 엔지니어링 자료를 도판과 자를 사용하여 손으로 그렸고, 이 자료는 청사진으로 복사되어 보관, 유통 되었습니다. 당시의 인쇄(Lithography) 산업은 한 나라의 엔지니어링 산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 입니다.

완전 대칭에서 ‘불완전 대칭’으로

플라나 렌즈 디자인은 무려 19세기 말에 나왔지만 정작 칼 짜이스가 사진기 시장에 내놓은 렌즈는, 3군4매로 설계된 텟사(Tessar) 렌즈입니다. 1903년 발매이후 사진기 시장에서 공전의 히트를 치고, 수많은 아류가 나오면서 3군 4매 디자인을 Tessar type 이라 부르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슈나이더 제나(Xenar), 라이카 엘마(Elmar), 폭트랜더 스코파(Skopar) 등등)

그렇지만 플라나 디자인의 장점이 아주 잊혀진 것은 아닙니다. 1920년 영국의 광학회사 Taylor, Taylor & Hopson (약칭 TTH) 에서 디자이너 ‘호레이스 윌리엄 리’가 플라나의 완전 대칭을 깨고 비대칭 요소를 도입한 새로운 렌즈를 발표합니다. 이 렌즈를 TTH O series 또는 디자이너의 이름을 따서 Lee Opic 렌즈라고 부릅니다.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는 대구경 표준 렌즈 디자인은 사실 영국의 Taylor, Taylor Hopson 으로 공이 돌아 갑니다

Lee Opic 렌즈는 전면 그룹을 후면 부보다 약간 더 크게 만들고 전면 그룹과 후면 그룹 렌즈 알의 굴절률을 변경시켜 완전 대칭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완전 대칭 구조는 1:1 촬영에 렌즈가 최적화 되기 때문에, 약간의 비대칭을 넣어서 1:5, 1:10, 더 나아가 1:100 에서 수차가 최적화 되는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서 입니다. 따라서 완전 대칭 플라나는 50mm 렌즈가 50mm 떨어진 피사체 (1:1) 촬영에 최적화 되는 반면 Lee Opic은 50mm 렌즈가 5미터 촬영 거리(1:100)에 최적화 됩니다.

문제는…. Lee Opic 렌즈를 받쳐줄 만한 사진기 산업이 영국에는 없었다는 점 입니다. 영국의 사진기 산업은 이미 독일에 밀리면서 지지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관심을 가질만한 영국산 사진기는 (수집용으로 비싸게 거래되는) 일포드의 Witness 나 잠망경의 원리를 사진기에 적용한 Periflex 정도인데, 구조가 신기하기는 하지만 필름을 넣어서 촬영하는 용도로 권하기는 어렵습니다

슈나이더의 제논 그리고 비오타

1925년 당시는 신생기업이던 독일 슈나이더(Schneider Kreuznach)사에서 Lee Opic을 다시 변형시킨 제논 Xenon 50mm f2.0 렌즈를 만들어 냅니다.

제논 50/2.0 렌즈는 Lee Opic 보다 전면 그룹을 더 키우고, 후면 그룹 렌즈알의 곡률과 방향을 바꾸어 (왼쪽으로부터 4번, 5번 렌즈 알) Opic 렌즈에 약간이나마 남아있던 대칭성을 완전히 없엤습니다 . 크기가 늘어난 전면 렌즈는 넓은 각도에서 빛을 모아 이미지 서클을 키울 뿐 아니라 렌즈 주변부의 비네팅도 개선하여 줍니다. 사실 Opic 이후의 모든 더블 가우스 렌즈는 렌즈 알의 곡률과 굴절률, 렌즈 요소간의 거리, 더블렛(2개 접합 렌즈)를 얇은 공기층으로 띄우기 그리고 첫번째 또는 마지막 렌즈 알 1장을 2장으로 쪼개기… 등등의 방식으로 재설계한 것들입니다

1927년 독일 칼 짜이스 (당시는 Carl Zeiss Jena)에서 비오타 50mm f1.4 렌즈를 만듭니다. 이 렌즈는 조리개가 Opic, Xenon 보다 한 스톱 더 밝은 대신, 이미지 서클이 작아서 사진용 렌즈가 아니라 35밀리 영화 촬영에 주로 사용 되었습니다 (35밀리 영화는 35밀리 사진과 같은 필름을 사용하지만 이미지 크기는 절반 임)

 

 

1936년 드디어 사진기 용 렌즈 Biotar 58mm f2.0가 발매되어 일안 반사식 카메라 엑작타(Exakta)에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어찌된 일인지 칼 짜이스는 이때까지 플라나(Planar)라는 이름은 아주 잊어 버린듯, 또는 플라나는 인쇄용 렌즈, 비오타는 사진용 렌즈로 구분하려는 듯, 전혀 카탈로그에 올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Biotar

 

비오타 렌즈를 제논과 비교하면 첫번째 렌즈 알이 더블렛(2번, 3번)과 공기층을 두고 떨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렌즈 요소 사이의 얇은 공기층은 굴절률이 1인 렌즈라 가정하고 계산식에 포함할 수 있습니다. 즉 렌즈 간격도 수차를 수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것입니다

     비오타 75mm f1.5 1938년에 발매. 준 망원 렌즈. 회오리 보케의 끝판왕

최초 비오타 50/1.4의 이미지 써클은 35밀리 사진 크기에 약간 못미치지만, 초점거리가 50% 늘어난 75/1.5는 충분한 이미지 써클을 가지기 때문에 사진용으로 사용됩니다. 외형에 따라 3가지 버전이 있으며, 윗 그림은 개체수가 가장 많은 version 3 입니다. 최근 2-3년 사이에 가격이 급격하게 올라, 1000 유로를 훌쩍 넘겨 버렸습니다…. version 2 를 잘 가지고 있다가 가격 급등 전에 팔아버린 1인….ㅎㅎㅎ 아까비

쫄딱 망해버렸다, 2차 세계대전

광학 회사 칼 짜이스의 원래 이름은 칼 짜이스 예나(Carl Zeiss Jena) 입니다. 19세기에 설립될 때부터 예나(Jena)라는 도시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2차대전 이전의 제품에 모두 Carl Zeiss Jena 라는 상표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보니 유럽의 회사는 근거지를 삼고 있는 도시 이름을 넣은게 제법 많습니다. 라이카를 제조하는 회사 이름이 라이츠 베츠라 (Leitz Wetzlar), 베츠라 시에 있습니다. 슈나이더 크로이츠나 (Schneider Kreuznach) 는 바드 크로이츠나(Bad Kreuznach)시에 있습니다. 마이어 괼리츠 (Meyer Golitz)사는 어디에 있는지 짐작할 수 있겠죠? 삭소니아 주 괼리츠 시에 있습니다

문제는 2차대전이 끝나면서 예나가 소련군 점령지역에 들어가게 되면서부터 입니다. 이 지역은 원래 미국 패튼 장군의 3군단이 진격을 하였는데 독일이 항복한 이후 미영프러 4개국이 독일에 금을 그으면서, 소련 점령 지역으로 넘겨준 것 입니다

칼 짜이스 예나는 전쟁 중에 군수용 광학 장비를 생산하고 있었고, 당시 군사 비밀이던 렌즈코팅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터라 지속적인 폭격으로 상당한 손상을 입었습니다. 렌즈를 생산하는 짜이스 공장과 광학 유리를 생산하는 쇽트 (Schott Glass) 공장에 가장 큰 피해를 입힌 것은 1945년 미8공군이 벌인 892차 임무(Mission 892) 입니다. 이때 미군은 1,328대의 폭격기 (B-17과 B-24 혼성) 그리고 820대의 P-51 전투기를 동원하여 고폭탄과 백린탄으로 예나를 초토화 시켰습니다. 당시 독일은 슈발베 제트 전투기(Me-262) 를 가지고 있었지만 36대의 제트기로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은 2천여대의 적기를 막을 방법은 없었습니다. (정말 후덜덜한 물량빨… ㅎㅎ)

거기에다 점령군 소련은 전쟁배상금 명목으로 남아있던 독일의 산업시설을 뜯어가기 시작했는데, 예나의 ‘칼 짜이스’ 광학, 드레스덴의 ‘짜이스 이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러자 칼 짜이스 예나의 직원들은 둘로 갈라졌습니다. 자유를 찾아 서방으로 가려는 사람들과, 끝까지 남아서 회사를 지키려는 사람들…

당시 사람들은 철의 장막을 사이로 벌어진 험악한 대립이나,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되어 수십 년간 적대국이 되리라는 것을 예측하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격랑에 휘말린 독일의 운명처럼 사람들도 각자의 신념에 따라 흩어진 것입니다

서방 세계로 탈출

서방으로 탈출한 칼 짜이스 예나의 직원들은 한적한 시골 마을, 오베르코헨에 모여 언덕 위에다 작은 공장을 하나 만듭니다. 그리고 습관에 따라 동네 이름을 넣어 Opton Optische Werkstätte Oberkochen 이라는 회사를 만듭니다. 그리고 얼마 후 ‘짜이스-옵톤 (Zeiss-Opton)’ 으로 이름을 바꾸고 동서독의 회사가 Zeiss 라는 이름을 사이 좋게 공유합니다. 적어도 60년대 말까지는 동독의 Carl Zeiss Jena, 서독의 Zeiss-Option (이후에 Carl Zeiss West Germany) 이 전후 복구, 생산 및 세계시장 진출에 상당부분 협업을 하였습니다
드레스덴에 있던 짜이스 이콘은 칼 짜이스에 비하면 나은 형편이었습니다. 짜이스 이콘 콘체른의 한 부분, ICA 의 공장이 서독 슈트트가르트에 있어서, 최소한 비빌 언덕이라도 있었던 것 입니다. 서독의 짜이스 이콘은 ‘Zeiss Ikon Stuttgart’ 로 개명하고 Contax IIa 와 Contax IIIa 를 내놓습니다

        Zeiss Ikon Stuttgart logo / Contax IIIa

 

 

/  계속 /

 

글쓴이 Leo_KHIM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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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타이페이 > 네덜란드 아인트호벤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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